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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10-23 13:41
▣ 특수교육 약사(1): 1445-1893
 글쓴이 : 조홍중 (168.♡.220.133)
조회 : 8,347   추천 : 981  
▣ 특수교육 약사(1): 1445-1893

■ 선사시대       
  복지(福祉)란 고대 중국에서는 사회에 대한 어원을 보면 25가구(家口)를 1사(社)라고 불렀고, 이 1사(社)들이 많이 모인 것을 사회라고 하였다. 한편 옥편에서 복지(福祉)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복(福)자와 지(祉)자 모두가 복이라는 뜻으로 해서되고 있다. 우리말로 복이란 넓은 의미에서 잘 산다라는 것인데 이는 물질적인 풍요와 아울러 정신적인 행복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우리 옛 말에 오복(五福)이라는 단어가 있듯이 복의 개념은 상당히 포괄적인 것이다. 부(富), 번영, 안녕과 같이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차원에서 풍족하거나 불편함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가 하면 쾌락, 만족, 행복과 같이 심리적, 정신적 그리고 심지어 영적인 차원의 상태를 의미기도 한다.〈한국사회복지관협회 편집부(1995). 사회복지란 무엇인가?〉



■  60000前       
  J. Eccles(1982)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원시적 형태의 특수교육은 Neandertal인에 의해 실시 되었다. Neandertal인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Neandertal인은 두뇌 손상 때문에 치료를 받았으며, 그 때문에 2년쯤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황원영, 1994.p.1).



■ 28년       
  신라 유리왕 5년 노병(老病), 불능자존자(不能自存者)를 부양케 함



■ 990년       
  성종 9년 독질자(篤疾者-불구의 페질자를 말함; 폐질(廢疾이란 맹인, 절름발이, 나병환자, 안질환자, 벙어리(聾者), 꼽추, 고자 등을 말하는데 이들은 스스로 의식주의 해결이 불가능한 자들이었다) )에게 곡포를 주어 구휼
  독질(篤疾)이란 악성질병, 간질병, 양목맹인(兩目盲人), 2지(肢) 절단자 등이며, 폐질은 백치, 벙어리, 난장이, 1지(肢)를 못쓰는 사람을 지칭한다. 



■ 1313년       
  충숙왕 원년 80세 이상의 독페질자를 동서 대비원에서 양호케 함
  독질(篤疾)이란 악성질병, 간질병, 양목맹인(兩目盲人), 2지(肢) 절단자 등이며, 폐질은 백치, 벙어리, 난장이, 1지(肢)를 못쓰는 사람을 지칭한다.



■ 1325년       
  충숙왕 12년 동서 대비원에서 질병을 치료케 함. 충숙왕 12년 사궁(四窮 : 鰥寡獨孤)으로 병들고 자활할 수 없는 자에게 진휼케 함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鰥(홀아비)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을 寡(과부)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것을 獨(무의탁자)이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는 것을 孤(고아)라 한다.



■ 1402년       
  태종 2년 이전 맹인들의 집회소인 명통시(明通寺란 고려 때부터 장님들을 한데 모아 독경(讀經), 축수(祝壽), 점복(占卜)을 가르치고, 점복 등 유사시 국가적 행사에 동원하기도 했으며, 임금이 능(陵)을 참배하는 행사 때 열을 지어 배웅시키는 일을 맡게 하는 관서를 말한다) 설립



■ 1445년       
  세종실록(세종 27년 3월 무인조, 1445)에 의하면 “영리한 소경 10명을 선발하여 훈도 4-5명으로 하여금  3일에 한번씩 정부기관인 서운관(書雲觀)에서 점복업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김승국, 1994)." 그리고 일부 음악에 재능이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관현맹으로 세종조에 설치된 궁중연주실에서 궁중내연에서 관현합주나 가무연주의 반주를 하였다. 김승국(1994)은 이것을 우리 나라 특수교육 성립의 기점으로 잡고 있다.
  서운관(書雲觀)은 이미 고려때 부터 설치되어 세조 12년(1466)에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되어 여기서 명과학(命課學, 세조 12년에 陰陽學에서 개칭)을 가르쳤는데, 명과학(命課學)은 운명,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잡학으로서 관상감에 소속된 맹 훈도는 산대 (算木)를 이용하여 숫자 배열학습, 제창학습(提唱學習), 수장학습(手掌學習) 등을 교육받았다. 명과학을 배운 맹인은 잡학 과거시험인 취재 (取才)에 응시하여 합격한 자에게는 검교직이나 체아직을 주고 녹봉을 주어 공직에 종사하게 하였다(오천균,1988. p.3, pp. 98~105).



■ 1620년       
  스페인, Bonet가 농아자를 위한 수화알파벧 창안, 「알파벧의 단순화와 농아의 언어교수방법」을 저술


■ 1670년       
  라나 떼르지(Lana-Terzi, F. 이탈리아) 는 1670년 맹인도 쓰기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점과 선을 조합하여 알파벳을 포기하도록 고안했다. 알파벳을 두 개의 평행선을 긋고 구획을 정하여 배치한 다음 그것을 점으로 나타나게 하였다. 이러한 점과 선으로 구성한 맹인 문자는 150년 후 바즈비에르가 창안한 12점자 구성에 크게 기여했고 결국 오늘날의 점자 창안에 선구가 되는 것으로 주목할 만 하다.



■ 1712년       
  아베 도 레뻬(Abbé, l'de Epée, Charles-Michel. 1712~1789. 프랑스) 아베 도 레뻬는 수화법(手話法)을 창시하였으며, 농교육에서 개인적인 사교육에서 공교육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고대 중세를 통해서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농자(聾者)의 교육은 16세기, 17세기에 이르러 인간자체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려는 움직임과 당시의 왕후 귀족 가정의 교육 수요에 의해 농아자에 대한 교육이 행하여 졌다.
  아베 도 레뻬 농교육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는 농교육의 공교육화를 시도하였다. 즉, 빈부 구별을 하지 않았고, 소인수(少人數)가 아닌 가능한 한 많은 아동을 받아드렸으며, 사재(私財)에 의한 학생의 지원도 하지 않았으며, 교육방법을 비법화(秘法化)하지 않고 공개하였으며 제자를 양성한 것 등이다. 이러한 그의 헌신적인 활동은 1778년에는 루이 16세의 보호를 받았으며, 1785년에는 수도원의 시설과 보조금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파리 국립농학교의 기초가 되었다.   



■ 1727년       
  하이닛케(Heinicke, Samuel. 1727.4.10.-1790.4.30.) 독일의 독순술(讀脣術) 교사. 농아 교육에 독순술을 사용할 것을 제창했다. 하이니케는 시골학교에서만 교육을 받은 후, 군대에 입대했고 그곳에서 책과 언어에 깊이 몰두하게 되었다.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했으며, 이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농아에게 말하기를 가르치는 데에 성공한 한 스위스 의사의 저서 〈말하는 농아 Surdus loquens〉(1692)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778년 하이니케는 독일 최초로 농아학교를 설립했다. 독순술이 사회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독순술을 가장 좋은 훈련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수화법에 의존하는 방식을 완강히 반대했고, 1780년에는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가르치는 파리의 학교를 세운 드 레페 대수도원장을 공격하는 책을 발간했다. 하이니케는 농아들과 함께 선구적인 연구로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 구화법(口話法)을 음성학적 방식으로 읽기를 가르치는 방법을 개발했으며 구체적 경험이 추상적인 교수법에 선행되어야 한다고 는 신념을 역설하였다.



■ 1745년       
  아우이(Valentin Haüy, 1745~1822.프랑스) 농교육의 선구자인 도레뻬(Abbe de L'Epee)의 교육 사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26세 때 시장에서 파리의 군중들이 맹인 걸인에게 잔인하고 비인도적으로 조롱하는 것을 보고 맹인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결심했으며, 물건을 구걸하는 맹인이 화폐의 차이를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촉각을 가지고 있는 점에 대하여 감탄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후에 아우이가 맹인에게 문자를 가르치고 직업교육을 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파리 맹학교에서는 쓰기, 수학, 지리, 음악 그리고 직업교육으로 수공을 가르쳤는데, 수공에는 방직, 직조, 뜨개질, 바구니, 책 제본, 등의자, 인쇄술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아우이는 파라디스, 사운더슨, 위젠버그의 경험과 업적도 기술했는데, 맹인과 정상인을 교육하는 수단 사이에 가장 엄밀한 유사성을 찾기 위하여 그들의 업적을 과장하지 않았다.
  아우이의 맹교육의 성공은 외국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예를 들면 1793년에는 아우이의 맹교육론(Essai sur I'Education des Aveugles)이 번역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영국에서는 파리 맹학교의 예를 따라 1791년에 리버풀에, 1783년에는 브리스톨과 에딘버러에, 그리고 1804년에 빈에 각 각 맹학교가 설립되었고, 점차 유럽의 대도시에도 맹학교들이 설립되었다.



■ 1749년       
  디드로(Diderot, Denis)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이며, 철학자, 문학자이다. 주요저서로서 맹인서간(盲人書簡, 1749), 등이 있다. 1751년 『농아에 관한 편지』(Letter sur les sourds et muets)라는 책을 서술했다. 그는 『盲人書簡』『續盲人書簡』을 통하여 맹인이 어떻게 공부를 하고 성공했는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맹인의 교육가능성을 입증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는 그의 『盲人書簡』가 화제에 오르게 됨으로써 후에 파리 맹학교의 설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 1760년       
  Abbe Charles Michel Épée(1712~1789)에 의해 세계최초의 특수학교인 파리농학교의 설립



■ 1767년       
  바르비에르(Barbier. C, 1767~1841) 브라이유가 점자를 발명하게 된 것은 당시 프랑스의 군 장교였던 바르비에가 발명한 야간 문자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바르비에르는 프랑스의 군인이며 12점 점자의 창안자이다. 육군 대위로 복무 중 어두운 밤에 불을 켜지 않고 군사용 전언 등 신문을 읽을 수 있는 문자를 개발하려고 했다. 눈 대신 손가락으로 읽을 수 있는 점문자를 생각하고 종(縱)으로 6점 횡(橫)으로 2점 모두 12점으로 된 야간문자(ecriture noctume-암호문자)를 완성했다. 그의 야간문자는 위에서 아래로 6점, 좌우 2줄로 모두 12점으로 구성되었고, 점자 필기 도구는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점자판, 점필과 비슷했다. 바르비에는 맹인들이 그의 야간 문자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1821년 파리 맹학교에서 그 문자를 시범해 보였다. 당시 파리 맹학교에 재학 중이던 브라이유는 야간 문자를 보고 위에서 아래로 6점을 한 번에 지각하기에 너무 길다는 것을 발견하고, 점칸을 반으로 줄여 위에서 아래로 3점, 좌우 2줄 모두 6점으로 점칸을 구성했다. 후일의 연구에서 6점의 배열이 촉독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브라이유는 1824년에 점자를 발명했고, 1829년에 자신의 문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1837년에는 다시 수정하였으나 아무도 그의 점자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자는 맹인들이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맹학생들은 필기를 하거나 책을 점역함으로써 점자를 계속 사용했다. 결국 점자는 브라이유가 죽은 2년 후인 1854년에 파리 맹학교에서 공식 맹인용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거의 다른 모든 언어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서양의 맹교육 역사를 보면 디드로가 맹교육에 점화했고, 아우이는 그를 실천했으며, 브라이유는 그 수단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 1778년       
  Samuel Heincke(1727~1790)에 의해 Leipzig에 세계 최초의 공립구화학교 설립(公立聾學校)



■ 1774년       
  이타르(Itard,J.M.), 아베론의 야생아에 대한 제1보고서-1799년 7월 남부 프랑스의 아베롱 숲에서 11세~12세로 보이는 야생아가 발견되었다. 그 해 8월에 파리에 데리고 가서 국립농아학교에서 교육이 시작되었다.
1) 제1보고(교육개시로부터 9개월 간의 기록) Itard는 다음과 같은 교육목표를 세웠다. 제1목적 : 사회생활습관 형성, 제2목적 : 신경의 감수성을 자각, 제3목적 : 관념의 범위를 확대, 제4목적 : 모방훈련을 통해 언어사용을 유도, 제5목적 : 간단한 정신작업을 시켜 고차원의 교육과제로 향상시켜 가는 것- 9개월 간의 교육에 의해서 야생아는 모든 감각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비교, 통찰, 판단이 가능하고 지성의 전 능력을 교육대상으로 적용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 제2보고(그 후 4년간의 교육의 결과 정리) Itard는 4년간의 교육의 결과를 정리해서 청각기관과 음성기관이 거의 무감각하기 때문에 야생아의 교육은 불완전하고, 많은 감각기관이 장기간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발달이 지체되었고, 감정의 움직임도 장기간 마비되어 있던 이유로 불충분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3) Itard의 교육의 의미(특징) ① 야생아의 기분을 존중: Itard는 교육에 대해서 남 못지않는 결의로 임했지만 결코 강요하지 않았다. ② 교육의 순서성을 중시: 인간의 발달을 위해서는 먼저 모든 감각기관을 발달시킬 필요가 있고, 이러한 감각의 발달에 의해 주의력, 판단력, 기억력이 발달하고 지성이 육성된다. ③ 교육에 있어서 아동 관찰에 근거한 창의적인 시도가 필요, ④ 교육에 대한 정열



■ 1783년
  정조(正祖) 7년에 관부(官府)에 육기아(遺棄兒)를 위한 留養制度로서 販恤典則을 제정



■ 1784년
  1월 16일 아우이(Vanlentin Haüy, 1745~1822)에 의해 파리맹학교(the Royal Institution for Blind youth)의 설립. 첫 입학생은 Germain 교회에서 구걸하는 17세된 Francais Lesueur였다-세계 최초의 맹학교 설립



■ 1784년       
  페류우(Ferrus,G.M. 1784~1861. 프랑스) 1826년 비세트르원의 원장이되어 범죄자와 정신질 환자를 분리, 작업요법을 도입하는등 개혁을 하였다. 1828년 비세트르원의 「백치」중에 경도의 아동에게 읽기, 쓰기, 계산, 체육 등을 교육하였다. 



■ 1787년
  걀로댁트(Gallaudet, T.H. 1787~1851. 미국) 1817년에 개설된 미국 최초의 농아를 위한 시설의 장이 되었다. 농아의 수화를 인정하고 수화와 지문자에 의한 교육방법을 채용하였다.



■ 1794년       
  코노리(Conolly,J.1794~1866. 영국) 미국의 정신과 의사로서 무구속(無拘束)을 원칙으로 한  정신요법을 제창하였다. 영국 최초의 백치 시설인 「파크 하우스」의 창설에 진력하였다.



■ 1800년       
  베롬(Belhomme,J.E. 1800~1880, 프랑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로서 백치(白痴)의 처우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를 남겼다. 백치는 장애의 정도에 따라서 교육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백치를 선천성, 소질성으로 보았다. 



■ 1801년       
  하우 (Samuel Gridley Howe, 1801.11.10.~1876.1.9.) 미국의 맹 교육자로서 퍼킨스 맹학교의 초대 교장을 지냈다. Howe는 미국의 맹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하우는 영리하고 호기심 많은 자매 Abbe Carter와 Sophia Carter를 데리고 교육을 시작했다. 하우는 조기부터 맹아동을 생산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은 세금으로 맹인을 부양하는 책임에서 국민을 해방시키는 것이고(節稅論), 체육은 신체의 비능동적인 경향 때문에 맹아동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무관심이 맹아동의 과도한 호기심을 위축시키지 않기 때문에 과보호나 응석을 받아 주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다. 각 맹아는 개인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훈련하여 지역 사회에서 배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맹학교 교육과정은 잘 종합해야 하고 가능한 한 일반 학교의 교육과정과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음악과 수공은 더 강조되어야 한다. 중요한 목표는 맹 아동을 그 지역 사회의 사회ㆍ경제적 생활에 공헌하는 일원으로 훈련시켜야 한다(Farrell, 1956, p.45)
  하우는 퍼킨스 맹학교를 발전시킨 것 외에 두 가지 교육 사업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퍼킨스 맹학교의 맹학생들이 배운 것을 다른 주 의회 의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맹학교의 설립을 도왔다. 또한 하우는 1837년에 입학한 맹농아 로라 브리지만(Laura Bridgman)의 교육을 시작했다. 그는 盲聾啞인 로라 브리지먼(Laura Bridgman)에게 알파벳을 가르쳤다. 로라 브리지먼은 1829년에 태어나 병으로 2세때 농맹아(聾盲啞)의 장애를 갖게되었다. 하우는 구화와 같은 언어지도법을 적용하지 않고 펜과 핀과 같은 짧은 단어로 시작하는 로라 브리지먼에 맞는 지도법을 고안하였다. 로라 브리지먼는 퍼킨스 맹학교의 주요인물로서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 1804년       
  클라인(Klein, J. W. 오스트리아)은 19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맹교육자이다. 그는 1804년 빈 맹학교를 설립했고, 1810년 맹아동의 일반 공립학교에서 일반 아동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836년 맹아동의 지역사회 학교와 가정에서의 교육을 위한 지도서를 편찬했다. 또한 시각장애아 교사 양성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맹교사의 양성은 맹학교와 교사 양성대학의 협력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여 이 두 시설이 동일지역에 없을 경우 그 보완방법도 상세히 제시했다. 또한 맹인의 보행훈련에도 큰 관심을 보였고, 안내견의 이용과 오늘날과 같은 하니스(Harness)를 사용할 것도 강조했다. 그는 하우(Howe), 아우이(Hauy)와 함께 세계 3대 맹교육자로 존경을 받고 있으며 일생을 맹인의 통합교육을 위하여 노력했다. 저서로는 『맹교육을 위한 교재(Textbook on the Education of the Blind)가 있다.
           


■ 1812년       
  세강(Séguin, Edouard, Onesimus. 1812.1.20.~1880.10.28.) 프랑스 태생 미국의 정신과의사로서 중증의 정신지체아에 대한 생리학적 교육이라는 근대적인 교육법을 개척했다. 1837년 세강은 「아베론의 야생아」교육실험으로 유명한 이타르의 지도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백치(白痴)」아동교육을 하게 되었다. 1838년에 이타르는 죽었지만 계속해서 피넬과 에  스키롤의 지도를 받았다. 1839년에 그 결과를 그들과 연명으로「우리들의 14개월 간의 교육  실천」이란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세강은 신그리스도교주의의 생시몽(Saint-Simon) 사상에 입각하여, 스스로 「백치」교육을「가장 낮으며 가장 가난한 계층을 가장 빠르게 향상시키기 위한 사회적 실천」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1846년에「백치의 대헌장(Magna Carta)」라고 부르는 최초의 체계적인 저서인 「백치의 도덕적 치료, 위생 및 교육(전 734쪽)」을 저술하였다.
  1839년 세강은 중증 정신지체아를 위한 학교를 세웠는데, 이곳에서 그는 후에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는 치료법을 발전시켰다. 이 치료법은 정신지체란 질병이나 뇌의 이상이 아니라 단지 출생 전이나 출산 도중, 또는 출생 이후에 정신발달이 멈춘 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일 뿐이라는 획기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 따라서 치료는 가능한 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고안된 감각훈련으로 이루어졌다. 세강의 학교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와 비슷한 기관들이 전(全)유럽에 걸쳐 많이 설립되었다. 1846년에 그는 〈정신지체아에 대한 정신치료, 위생 및 교육 Traitement Moral, hygiene et education des idiots〉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것은 곧 심리학 분야의 고전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정신지체아도 특별한 감각 훈련법을 통하여 학습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미국의 정신지체교육은 1848년 세강이 도미한 후 하우와 협력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세강은 펜실바니아 정신지체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 1810년       
  리틀(Little,W.J. 1810~1894. 영국) 소아의 경직성 강강형(Spastic rigidity)의 증례를 수 없이 소개하고, 그 치료로 종수치료(從手治療), 맛사지, 온욕(溫浴), 체조, 기계, 수술 등을 적절히 병용하여 이용하고 있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뇌성마비아의 치료역사는 리틀부터 시작하였다.


 
■ 1817년       
  덴마크, 농아의 취학의무제 규정



■ 1823년       
  게오르겐스(Georgens,J.D.1823~1886. 독일) 다인하르트(Deinhart, H.M. 1830~1880. 독일)와 협력해서 양호교육시설「레바나」를 창설하였다. 이 시설에서의 실천에 입각하여 2명의 공저「치료교육학, 특히 백치와 백치시설을 고려하여」를 간행하고, 독일에서 처음으로「치료교육학」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 1824년       
  아미테지(Armitage, Thomas Rhodes. 1824~1890. 영국) 토마스 로드 아미테지는 1824년 영국 서섹스(sussex)에서 태어났다. 아미테지는 영국의 시각장애아(인)의 교육과 복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1828년       
  다운(Dawn, John Langdon Hydon. 1828~1896. 영국) 다운은 영국에 있어서 최초의 본격적인 시설인「아르스 웨드백치 시설」에 의사로서 관여하였다. 1966년 상염색체(常染色體) 이상에 의한 특이한 용모, 신체증상과 지능장애를 나타내는 질환, 즉 다운증후군을 최초로 보고하였다. 다운증후군(Down's syndrome) 은 정신지체의 한 특수형이다. 정신증세로는 지능장애가 현저하고, 백치, 치매가 많다. 침착성이 없고 호기심이 강하며, 누구에게나 잘 따르며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엉뚱한 흉내와 농담으로 주위의 시선을 끌기도 한다. 그 밖에도 머리의 전후 지름이 짧은 소두증(小頭症), 낮은 코, 큰 혀, 손, 발가락의 이상, 가느다란 안열(眼裂),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 있고, 양쪽 눈시울 사이에 군살주름(몽골주름이라고도 한다), 선천성의 심장판막증, 발육장애 등의 특이한 용모와 증세를 나타낸다.
  염색체의 이상으로 생기는데, 대부분(약 95%)은 21번째 염색체가 3개(정상은 2개) 있어서 전체가 47개(정상은 46개)로 되어 있는 기형이다. 나이가 많은 초산부(35세 이상)에서 흔히 이런 아이가 태어나며 600~700명에 1명꼴로 있다. 감염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기 때문에 병에 걸리기 쉽다.
         


■ 1829년       
  브리지먼 (Laura Dewey Bridgman, 1829.12.21.~1889.5.24)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최초로 성공을 거둔 맹농아(盲聾啞)의 한 사람이다. 2세 때 갑작스럽게 성홍열을 앓게 되어 시력과 청력을 영원히 잃고 말았다. 보스턴에 있는 퍼킨스 맹학교의 교장이었던 하우 (Samuel Gridley Howe)가 그녀의 이러한 상태에 관심을 가져 1837년 퍼킨스 맹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입학과 동시에 하우는 촉각을 이용해서 그녀에게 직접 알파벳을 가르쳤다. 그는 글자가 볼록하게 돌출하도록 만든 이름표들을 준비하여 열쇠, 숟가락, 칼 등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에 붙였다. 이 이름들을 익힌 후 그녀는 개개의 글자들을 배우고 알파벳과 10개의 숫자를 단계적으로 배웠다. 1842년 1월 이 학교를 방문한 찰스 디킨스는 나중에 하우가 로라 브리지먼에게서 성공한 사례를 〈일반인을 위한 미국인의 노트 American Notes for General Circulation〉에서 열정적으로 썼다.



■ 1830년       
  히르(Hill, Friedrich, Moritz. 1805.12.8.~1874), 독일에서 구화법의 단서(端緖)를 제시 히르는 하이닛게 이후 독일의 농 구화교육의 방법을 집대성하였다. 그는 농 교육의 의무화 이전에 그의 방법론적인 조건 정비와 교육실천의 확충에 공헌하였다. 그는 1838년 「농아교수 입문(聾啞敎授 入門)」,1839년「무의식적인 구화와 독순, 읽기, 쓰기에 있어서 농아아 교수(聾啞兒 敎授)의 입문전서(入門全書)」,1866년의 「독일에 있어서 농아교육(聾啞敎育)의 현상」 등이 있다. 



■ 1832       
  독일에서  Kurz에 의해 지체부자유아동을 위한 교육시설 설립



■ 1832년       
  캠벨 (Campbell. F. J.1832.10.9~1914.6.30)은 3세 때 사고로 시각장애인 된 그는 새로 문을 연 테네시 주립 맹학교(Tennessee State Institution for the Blind)에서 교육을 받았고 나중에는 테네시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곳의 음악교사로 일했다. 1872년에 학생 2명으로 시작한 그 학교는 최후에는 왕립사범대학과 음악대학이 되었고 1885년까지는 170명의 학생이 등록했다. 캠벨의 최초의 직원들은 해가 거듭되자 그는 퍼킨스와 미국에 있는 여러 학교와 계속해서 교사들을 교환했다. 그 결과 왕립 사범대학과 음악대학(the Royal Normal College and Academy of Music)은 어떤 다른 외국 학교보다 미국의 교수법에 영향을 더 많이 미쳤다. 캠벨의 책임아래 학교는 세심한 직업준비, 일자리 배치, 졸업 후 계속 돌보는 것과 함께 일반 교육과 신체훈련을 결합시켰다. 졸업생의 80%-90%가 자립하게 되었는데 대다수가 음악인, 교사, 피아노조율과 수선훈련을 받은 기술자가 되었다. 이 예기치 못했던 성과가 전세계의 맹학교로 하여금 직업준비에 중점을 두게 자극했다. 캠벨은 신체적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맹인이 활동적이고 광범위한 체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다.

     
■ 1834년       
  브라이유(Louis Braille, 1809.1.4~1852.1.6) : 맹인용 점자 알파벳 고안(1834년 개정하여 현재의 형태에 이르게 됨). 맹인들에게 널리 사용되는 브라이유식 활자체와 서체를 발명했다. 브라이유 사후 2년 1854년 파리맹학교에서 공식 맹인용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고, 1878년부터는 각 국의 시각장애인 교육자들이 6점식 점자를 사용하기로 결의하였다. 루이 브라이유의 이름을 따서 점자의 영어표기를 Braille라 한다.
  1829년에 자신이 발명한 점자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1837년에 점자를 보다 발전시켰다. 그가 창안한 6점 점자는 1854년에 파리 맹학교에서 맹아의 문자로 인정되었고 세계의 모든 다른 언어에도 적용하게 되었다.



■ 1843년       
  영국의 리틀(W.J. Little)이 뇌성마비 발견. 뇌성마비(Cerebral Palsy)에 대한 본격적인 의학적 접근은 Lettle(1862)이 난산에 의해 신경학적 이상을 일으킨 63명의 아동을 보고하면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정형외과라고 하는 의학의 한 분야를 확립하였다. 1853년 그는 「인체의 변형과 치료에 대해서(On the nature and treatment of the deformities of the human frame)」라는 저서에서 뇌성마비 환자의 특징을 경성(痙性). 고축(固縮, spastic rigidity)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하였다. 그는 1861년 런던의 산부인과학회에서의 특별강연에서 분만이 신생아의 중추신경계에 중대한 손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즉, 200명 이상의 뇌성마비 아동이 이상분만의 결과로 인한 것으로 추측된 점, 특히 난산, 미숙아, 신생아의 가사출산과 관계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다. 이와 같이 변형의 치료라고 하는 시점을 축으로 해서 현재에 이른 개념과 진단 및 치료의 원형을 이루게 되었다. 그 후 오랜 기간 뇌성마비를 Lettle씨 병이라는 용어로 불리게 되었다. 



■ 1848년       
  Seguin(1812-1880)이 미국에서 Howe(1801-1876) 등과 협력하여 정신지체아(인)를 위한 학교 설립



■ 1850년       
  Édouard Séguin이 미국으로 건너와 Howe와 함께 Massachusetts School for the Idiotic and Feeble Minded Children 설립- 최초의 정신지체학교.



■ 1851년       
  영국 멜본에 유럽최초의 지체부자유아 교육시설운영



■ 1856년       
  유길준(兪吉濬, 1856. 10. 24~1914. 9. 30.) 한말의 개화사상가. 근대 한국 최초의 일본과 미국 유학생으로 수많은 저작물을 발표하여 개화사상을 정립했고, 정치의 전면에 나서 전근대적인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개혁을 단행했다. 1895년 「서유견문」이란 저서를 통해 치아원(정신지체아 교육), 맹인원(맹교육), 아인원(농교육) 등에 관하여 다시 구미 특수교육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다
         


■1865년       
  포스트흐스카야(Postovskaya, M.P. 1865~1953. 구 소련) 1908년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초등학교에 모스크바에서 최초로 보조학급을 개설하였으며, 1910년부터는 학급을 보조학급(정신지체아), 복습학교(교육적 지체아), 보통아의 학급으로 분리시켰다. 1913년에는 정신지체아를 위한 유치원을 부설하였다. 



■1865년       
  Head Start at a glance(헤드 스타트)-헤드 스타트는 빈곤층의 어린 아동(3~5세)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1965년에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1,100만이 넘는 아동들이 전일 탁아, 발달 촉진, 영양 식사, 의료 및 치과 진료, 가족지원 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서비스를 받아왔다. 현재는 1,300개 이상의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에서 450,000명이 넘는 아동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아동들이 3세(25%)나 4세(60%)이고, 이들 중 약 3분의 2가 소수민족 출신이며, 주로 혹인(38% )과 히스패닉 (22% )으로 구성되어 있다.
  1972년 경제기회균등법(Economic Opportunity Act)은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에 적어도 10%의 장애아를 포함시킬 것을 의무화 하였다. 현재는 13% 이상의 아동이 장애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의 대부분(66%)이 언어장애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헤드 스타트에서 교육받고 있는 아동 중 중도장애나 최중도장애를 지닌 아동은 거의 없다.
  1988년 현재까지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에 의해서 약 80,000명의 인원이 고용되었다. 보수를 받는 직원의 30% 이상이 현재 또는 과거에 자녀가 헤드 스타트에 소속된 부모들이다. 보수를 받는 직원 이외에도 약 615,000명의 직원이 있으며 이들의 대부분이 부모들이다.
  1990년의 헤드 스타트 확장 및 질적 향상을 위한 법률 (Head Start Expansion and Quality In-provement Act)은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을 1994년까지 재위임하여 연장하였으며 재정적인 지원을 대폭 증가시켰다. 추가로 지원된 재정은 교사 복지, 통학 수단, 교사-아동의 비율 감소, 교사 교육 등을 위해서 쓰여지게 된다. 1990년의 이 법률은 주교육청과 지역교육청 등의 기타 기관들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1994년까지 각 학급은 (1)아동발달협회의 자격증, (2)조기교육 학위 또는 관련 학과 학위와 자격증, (3)아동발달협회의 자격증과 질적으로 유사하거나 능가하는 각 주의 자격증 중 의 하나를 갖춘 교사를 반드시 채용해야 한다. 또한 신생아 및 영아를 위한 헤드 스타트 대상아동의 연령 확장이 고려되고 있다(이소현, 1998).



■1866년       
  그라쵸와(Grachyova, E. K.1866~1934. 러시아) 러시아에서 중도 정신지체아의 보호와 교육을 실천한 최초의 교육자의 한 사람이다. 그녀의 실천은 러시아 최초의 정신지체아와 경련아동을 위한 학교설립의 출발점이 되었다.



■1866년       
  안나 설리반 메이시(Anne Sullivan Macy, 1866~1936)은 아일랜드에서 미국 메사츄세스주의 스프링필드로 이민한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눈의 질병으로 인하여 거의 전맹(全盲)의 상태였기 때문에 1880년 10월 14세의 설리번은 퍼킨스맹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1886년 보스턴에 있는 퍼킨스맹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다행하게 그녀의 시력은 나중에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설리번은 1세 8개월경에 걸린 병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어버린 6세 된 헬렌켈러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1887년 3월부터 설리번에 의한 헬렌켈러의 교육은 시작되었다. 그것은 헬렌켈러가 만6세 9개월 때이다. 헬렌켈러는 1세 8개월경에 걸린 질병으로 인하여 청력과 시력을 잃고, 6세 9개월까지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헬렌켈러의 가족은 군인(대위)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 제임즈와 4인 가족이었다. 헬렌켈러는 1세 8개월경 이후 매우 건강하였으며 혈색이 좋았으며 망아지처럼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녀는 손에 닿는 모든 물건을 만졌으며 만지는 물건은 무엇이고 부수고 말았다. 헬렌켈러는 처음 설리번을 만났을 때 그녀는 설리번의 얼굴과 옷과 핸드백을 만져보고 설리번의 핸드백을 뺏으려고 했다. 설리번의 트렁크가 도착하였을 때는 헬렌켈러는 트렁크를 여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트렁크에서 퍼킨스맹학교 소녀들이 보낸 인형을 보고 기뻐했다. 그때 설리번은 지금이야 말로 헬렌켈러에게 말을 가르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헬렌켈러의 손바닥에 천천히 지문자(指文字)로 d-o-l-l 이라고 쓰고, 그리고 인형을 가리키며 끄덕였다. 끄덕인 것은 준다는 신호이다. 헬렌켈러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필요한 때 필요한 물건을 가르키고 그리고 나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끄덕였다. 설리번은 후에 우물의 물을 손으로 떠서 그 차가운 물체가 물이라고 하는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을 끈기있게 지문자(指文字)로 가르쳤다.
  헬렌켈러에 대한 성공적인 교육은 기적이 아니며, 노력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점에서 헬렌켈러는 2가지 면에서 행운이 따랐다. 첫째는 헬렌켈러로부터 빛과 소리를 앗아간 유아기의 열병은 그녀의 지능에는 아무런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는 헬렌켈러는 훌륭한 교육자인 설리번여사를 만났다는 점이다.     
           


■1868년       
  비자르스키(Biesalski,K.1868~1930, 독일) 그는 1906년 독일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체부자유아동의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조사결과는 지체부자유아에 대한 재활지원의 필요성이 사사되었다. 그의 조사 후, 독일의 각 도시에 지체부자유아 시설을 급속히 증가되었다. 지체부자유아 사업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1868년
  New York point(뉴욕점자) 뉴욕 맹학교 교장 웨이트(William Bell Wait)가 1868년에 창안한 4점 점자이다. 종(縱)으로 2점, 횡(橫)으로 2점 모두 4점으로 구성된 점자로서 1871년 미국 맹인 교육자 협회의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그러나 점자 전쟁(War of Dots)이라 불리는 시기에 브래이유식 점자와 미국 점자 (AmericaBraille)에 대항하여 논쟁을 벌였던 일도 있었다. 이 점자는 4점으로 구성되는 점형의 수가 15개밖에 되지 않으므로 일부의 글자는 두 칸에 표기하는 불편이 있고 부피와 경비가 많이 든다. '불규칙 어간'이라고 불리는 이 것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제자(製字)된 브래이유식 점자에 밀려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홀(R. S. Hall)여사에 의해 뉴욕식 한글 점자가 1898년이래 평양을 중심으로 소개, 보급되었다



■1869년       
  헬러(Heller, T. 1869~1938. 독일) 1985년 「맹심리학연구」를 시작으로 맹교육의 심리를 확립하였다. 그 후 정신지체를 포함한 정신장애아 교육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1904년에는「치료교육학개요」를 저술하였다.



■1870년       
  영국, 초등교육법에 의해 의무교육 실시



■1870년       
  몬테소리(Montessori, Maria, 1870~1952.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교육자로서 그녀의 이름을 딴 교육방식을 창안했다. 몬테소리 방식은 아이들의 창조적인 잠재력, 학습에 대한 욕구, 한 개인으로서 대우받을 권리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1894년 몬테소리는 로마대학교 의학부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졸업하고 로마대학병원 정신과 임상부의 부의사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정신지체아의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899~1901년 로마 공립재활학교의 교장으로 근무했고, 그곳에서 사용한 교육방식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Itard, Ségun,의 감각훈련을 계승하여 읽기, 쓰기를 가능하게 하는 지도법을 발전시켰다. 1907년 이후에는 이 방법을 유아교육에 적용하여 성과를 보여, 독자적인 교구를 사용한 몬테소리법을 확립하였다. 



■1871년       
  도크로리(Decroly,O. 1871~1932. 벨기엘)「지체아와 이상아를 위한 특수교육학교」와 후에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에르미터쥬학교」가 된 일반아동을 위한 학교를 창설하였다. 학교교육계획 및 학교교육방법인 도크로리법은 스위스의 디크도르(Descoeuderes,A.)를 비롯하여 각 국의 정신지체아동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72년       
  덴마크 Copenhagen에 지체부자유아의 의학적 조처와 훈련을 위한 The Society and Home for Cripped을 설립



■1877년       
  에겐베르거(Egenberger,R.1877~1959. 독일) 보조학급의 지도를 담당하면서 장애아 교육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뮨헨의 보조학교 교원, 교장, 특수교육 제 단체의 중심 인물로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독일의 특수교육 교원양성의 강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1878년       
  고르드슈타인(Goldstein, K. 1878~1965. 독일) 뇌 손상병사의 실인(失認) 및 실행(失行) 등의 연구를 통해서 뇌 손상자의 행동 특성을 해명하였다. 게슈타르트 심리학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지각장애연구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1880년       
  헬렌 켈러 (Helen Keller, 1880.6.27.~1968.6.1.) 헬렌 켈러는 20세기의 장애인 가운데 최대의 명성을 남겼으며, 미국 국내뿐만이 아니라 교육과 복지의 개혁을 위해서 국제적으로 공헌한 맹농아(盲聾啞) 여성이다. 그녀의 교육과 훈련은 장애인 교육에 있어서 특출한 성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우(Samuel Gridley Howe)의 맹농아교육 보다 뛰어난 설리번(Anne Sullivan Macy)의 교육과정과 성과는 재평가 해야할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904년 매사추세츠 주 캐임브리지의 래드클리프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했으며, 거기서 설리번은 헬렌의 손바닥에 강의를 쓰는 방법을 이용했다. 일생을 농아와 맹인을 돕는데 바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통역자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장애자를 위한 교육을 진작시켰다. 3중고를 극복한 헬렌켈러 여사가 1937년 7월 13일 내한함으로써 한국 장애인들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1881년       
  노르웨이, 맹, 농아, 정신지체아동의 교육 의무화



■1882년       
  프랑스, 취학 의무화



■1884년       
  영국, 약시아동을 위한 특수학급 설치



■1885년       
  한젤멘(Hanselmann, H. 1885~1960. 스위스)「치료교육학」의 개념을 집대성하여 각 장애영역을 총괄하는 상위개념으로서 「특수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제안을 하였다.



■1885년       
  그라보로흐(Graborov, E, K. 1885~1949. 구 소련) 구 소련의 저명한 정신지체교육자이다. 구 소련에서 정신지체교육의 체계를 세웠다. 저서로는 「보조학교」가 있다. 



■1886년       
  유스티스 (Eusitis D. H. 1886.5.30.~1946.9.8.) 그녀는 1923년 조지 모리스 유스티스와 결혼했는데 이 두 번째 남편과 미국의 말 사육가이자 훈련사인 일리웃 S.(잭) 협프리와 함께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개를 키울 목적으로 독일산 쉐퍼드 개를 실험적으로 키울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녀가 훈련시킨 개들은 스위스에서 경찰견과 군견으로서 임무를 잘 수행했다. 유스티스 부인은 여러 해 동안 독일에서는 맹인들이 훈련된 개를 상당히 성공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또한 미국에서 맹인을 위해 이러한 기술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노력이 별 성과가 없음을 알았다. 안내견이 맹인의 독립적인 삶과 의존적인 삶 사이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조사해서 확신을 얻은 그녀는 1927년 The Saturday Evening Post(유스티스, 1927)에 “안내견”(The Seeing Eye)이란 기사를 썼다.
  1929년 유스티스 부인은 그녀와 프랭크가 일으킨 관심 때문에 생긴 안내견의 수요를 충족시킬 안내견 훈련학교를 세울 목적으로 후견인과 자금을 모으기 위해 미국에 되돌아 왔다. 1929년 테네시주 네쉬빌에 “안내견”(The Seeing Eye)이라는 이름으로 학교가 세워졌고, 17명의 맹인 남자와 여자가 그 첫해에 훈련을 받았고 그 다음해 그 학교는 뉴저지주 묘리스타운으로 옮겼는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도로시 헤리슨 유스티스는 안내견과 그 사용자인 맹인을 위한 최초의 훈련학교를 미국에 설립했고 1940년까지 그 학교의 교장으로 일했으며 1946년 9월 8일 뉴욕시에서 죽을 때까지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1888년       
  Ierland에 지체부자유아학교 처음 설립, 지체부자유(cripple)란 신체의 골격, 근육, 신경 계통이 어느 정도 무능력한 상태를 말한다. 지체부자유는 일련의 운동손상에 기인하는데, 지체부자유인 중에는 가벼운 보행 곤란만을 가질 수도 있고, 말하기, 먹기, 걷기와 같은 운동 기능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곤란을 갖는 중증장애일 수도 있다(Hunt & Marshall, 1994).
  일반적으로 지체란 사지 및 체간으로 이 경우 흉부나 복부에 내재하는 제 장기는 포함되지 않는다. 지체부자유란 사지 및 체간의 운동기능의 장애를 말하고 그 외견상 형태의 이상이나 그 원인은 문제되지 않는다. 운동기능 장애란 운동에 관계하는 기관인 골, 관절, 근육 및 신경 등의 외상 혹은 질병, 기능부전, 결손, 변형 등의 결과로 영구적으로 남는 운동기능의 부전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기능의 장애는 적절한 치료나 기타 방법에 의하여 개선시킬 수는 있으나 형태상에서나 기능상에서 정상은 될 수 없다.
  미국의 장애인교육법(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 IDEA)은 지체부자유아동을 “정형외과적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Hunt & Marshall, 1994). 정형외과적 장애란 심한 외과적 손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선천적 이상에 의한 손상(만곡족, 사지결여증 등), 질병에 의한 손상(소아마비, 골결핵 등), 기타 다른 원인에 의한 손상(뇌성마비, 절단, 골절, 화상에 의한 수축 등)을 포함한다(Amendments to the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 1990, sec. 300.6(6)). 이상과 같이 지체부자유아동이란 지체의 기능 형태상 장애를 지니고 있고, 체간의 지지 또는 손발의 운동 동작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하여 그대로 두면 장차 자활이 곤란한 아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지체부자유의 정의는 특수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교육진흥법 제10조 제1항에서는「지체부자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장애인의 복지를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복지법시행령 제2조제1항의 별표1에서는 「지체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특수교육진흥법 제10조 (특수교육대상자의 선정)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장애가 있는 사람 중 특수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진단 평가된 사람을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한다. 1. 시각장애, 2. 청각장애, 3. 정신지체, 4. 지체부자유, 5. 정서장애(자폐성을 포함한다), 6. 언어장애, 7. 학습장애, 8. 기타 교육인적자원부령이 정하는 장애
  특수교육진흥법 시행령 제9조2항 별표에 의하면「지체부자유를 지닌 특수교육대상자는 지체의 기능 형태상 장애를 지니고 있고, 체간의 지지 또는 손발의 운동 동작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하여 일반적인 교육시설을 이용한 학습이 곤란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1888년       
  박두성(朴斗星, 1888~1963)  박두성(朴斗星)의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송암(松庵)으로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상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어의동 보통학교(於義洞普通學校) 교사로 있다가 1913년 제생원맹아부(濟生院盲啞部: 서울盲學校의 전신) 교사로 취임하여, 이때부터 맹인교육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일어 점자로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오다가 1920년부터 한글점자 연구에 착수하였다.1923년 1월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7년간의 연구를 거쳐, 1926년 이른바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 불리는 한글점자를 완성하였다. 또한, 감리교 신자로서 서울 정동교회(貞洞敎會)와 인천 내리교회(內里敎會)에 교적(敎籍)을 두고 맹인들을 전도하였다. 그가 마련한 교재용 점자자료는 70여종에 달하며, 사재(私財)를 기울여 지방의 각 처에 통신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장애인 교육에 무관심하였던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상황하에서 사회에서 소외된 맹인들을 위하여 교육에 전념하였으며, 한글점자를 창안하여 특수교육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등 평생을 장애인교육에 이바지하였다.



■1886년       
  일본, 소학교 공포, 의무교육제도 확립, 장애아동 등의 취학유예를 규정 



■1887년       
  마텐즈(Martens, Elise H. .1887~.미국)는 제2차세계 대전 후 당시 미합중국 교육부에서 특수교육부 장관을 하면서 Curriculum Adjustments for the Mentally Retarded(1950)를 편집을 하였다. 이 책은 미합중국 교육부가 주체한 협의회에서 정신지체아교육의 지도자들의 연구 토의를 정리하여 1936년에 출판한 「정신지체아의 커리큐럼 작성을 위한 가이드」를 그 후 15년간의 발전을 기초로하여 10여명의 현장교사의 의견이나 경험을 추가하여 1950년에 개정판(改訂版)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1950년대의 일본 정신지체교육(일본은 당시는 정신박약, 현재는 지적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은 경험주의, 생활주의 의 커리큐럼의 기초가 확립된 시기이다. 원래 정신지체교육에 있어서 생활주의는 이타르(Itard, Jean Marc-Gaspard. 1774~1838.7.5.)와 세강(Séguin, Edouard, Onesimus. 1812.1.20.~1880.10.28.)을 계승 발전시킨 벨기엘의 도크로리에 의해서 그 단서(端緖)가 열리게 되었지만 도크로리가 그 원리를 일반교육에 적용한 「생활에 의한 생활을 위한 학교」는 그 후 미국의 보통교육에서 경험주의교육으로서 보급되고 세계 각 국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마텐즈는 1932년에는 장애아의 부모문제, 1937년에는 정신지체아의 직업교육문제, 1938년에는 가정과교육의 문제, 1949년에는 특수교육의 교원양성 문제를 학술지 등에  보고하였다. 그의 연구는 정신지체를 중심으로 특수교육의 많은 문제를 현장에 맞게 현실적인 입장에서 접근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52년에는 마텐즈는 이미 은퇴를 하고 힐(Hill, A.S.)이 미합중국 교육부에서 특수교육을 담당하였다.



■1889년       
  오슬러(W. Osler)에 의해 뇌성마비 명명



■1889년       
  돌(Doll, E.A.1889~1968, 미국) 정신지체를 단순히 지능면 뿐만아니라 사회 생활능력이라고 하는 종합적인 면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신지체의 6개 기준」을 제시하였다. 사회적 생활능력을 측정하는 바인라인드사회성숙도 척도를 창안했다.



■1889년       
  Osler(1889)는 「소아뇌성마비-정신병에서의 임상적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그의 논문에서 151例의 환자 중에 현재의 뇌성마비와 다른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문헌상 뇌성마비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 당시에는 「腦性分娩마비」「痙(直)性마비」「腦性痙(直)性마비」등의 용어가 혼용되어 용어의 통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1892년       
  영국, 정신지체아동 등을 대상으로한 특수학급 설치       



■1892년       
  인그램(Ingram,C.P.1892~.미국) 정신지체교육의 지도방법을 경험단원 방법을 제창하였다. 「Education of Slow Learning Child, 1935」에 있어서 경험단원의 제창은 정신지체아교육의 방법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892년       
  펄벅(Pearl Buck, 1892.6.26~1973.3.6.) 미국의 작가. 1931년 대지(The Good Earth)를 발표하면서 비로소 폭넓은 독자층을 얻게 되었다. 이 작품은 한 중국인 농부와 노비 출신의 아내가 땅과 지위를 얻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그렸으며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1936년에는 어머니의 초상, 싸우는 사도(使徒)를 출판하였다. 대지와 함께 이 두 작품으로 인하여 그녀는 1938년 노벨 문학상을 받게되었다.   
  속편으로 아들들(Sons, 1932)분열된 집안(A House Divided, 1935)이 발표되었으며, 이 3부작은 대지(The House of Earth, 1935)로 출판되었다. 그녀는 1917년 선교사 존 L. 벅과 결혼했으나 1934년 이혼하고, 다음해에 뉴욕의 출판업자인 리처드 J. 월시와 재혼하여 미국에서 살았다.
  1950년에는 자신의 정신지체 딸의 이야기, 후에 「어머니여 결코 탄식하지 말라(The Child who Never Grew)」를 출판하였다.
  펄벅의 장녀는 중증정신지체아였다. 그 경험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은 「어머니여 결코 탄식하지 말라(The Child who Never Grew)」이지만 대지에서 왕륭(王龍)의 백치의 딸과 손자의 꼽추소년과 이화(梨花)의 관계에 어머니로서의 펄벅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녀는 대지를 저술할 당시「나는 당시 매우 돈이 필요했었습니다.」라고 회고하였다.
  그녀는 3세가 되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딸을 보고 비통해 하였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딸의 행복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사후 딸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소설을 쓰기로 하였다. 그녀의 생각은 미국인다운 물질주의적이지만 어느 면에서는 부모의 심정을 단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대지는 이렇게 하여 쓰여지게 되었다. 



■1893년       
  영국 여왕의 제가를 얻어 최초의 장애아를 위한 의무교육법이 최초로 성립되었다(초등교육법(Elementary Education Act-blind and deaf children-)의 제정하였다. 동법에서는 5-16세 까지의 맹아 및 7-16세 까지의 농아가 초등의무교육을 받도록 규정하였다. 1918년 교육법(Education Act, 1918)에 의해 지체부자유아를 포함한 병허약아의 의무교육이 실시되었다.
「초등교육(맹 농아)법,1983년」: 1893년 9월 영국 여왕의 제가를 얻어 최초의 장애아를 한 의무교육법이 성립되었다. 이 법률에서 정식으로 맹 농아의 용어가 사용된 것과 같이 장애아 의무교육을 보장하는 최초의 교육법이다. 이 법률에서는 먼저 5~16세까지의 맹아 및 7~16세까지의 농아에 최초 의무교육을 받게 하는 부모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와 같은 장애아가 정하여진 취학기간에 그리고 적절하며 유효한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를 설치한다든지, 증축한다든지, 개조한다든지, 유지한다든지, 통학이 편리한 곳에서 하숙시킨다는지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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