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2-12-26 01:58
|
글쓴이 :
조홍중
 조회 : 10,950  추천 : 455
|
훈맹정음(訓盲正音)
박두성은 1888년 3월 16일 경기도 강화군 교동도에서 태어나 1899년 강화도 보창 학교를 거쳐 한성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어의동 보통 학교 교사로 취임했다. 1913년 제생원 교사로 임명되어 맹교육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평양에는 홀여사가 만든 4점형 한글 점자(이후 평양 점자라 함)가 사용되었고, 제생원에서는 일본 점자(6점형)가 사용되었다. 6점형 점자가 4점형 점자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인식한 맹학생들은 1920년 일본 점자 3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박두성 선생에게 6점형 한글 점자를 제정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이종화, 1973).
평양 점자는 하나의 자음이나 모음을 표기하는데 두 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이 구별되지 않아 문자로 큰 결함을 갖고 있으므로, 박두성은 홀여사에게 6점형 한글 점자를 함께 제정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홀여사는 일본어 점자까지 4점으로 제정하여 보내면서 4점형 점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박두성은 1920년 제자들과 함께 ‘조선어 점자 연구 위원회’를 조직하고 6점형 한글 점자 제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23년에는 3-2 점자(자음은 3점으로 모음은 2점으로 제자함)를 제정했으나, 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아 다시 연구를 계속하였고, 1926년 8월에 한글 점자를 제정하여 사용해 본 결과 그 우수성이 인정되어,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이란 이름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일반 맹인들에게「조선어 독본」, 「천자문」, 「명심보감」, 「편지틀」, 「불쌍한 동무」등 많은 점자 도서를 손수 만들어 자비로 통신 교육을 실시했으며, 점자를 모르는 맹인들에게는 점자판과 점자 해설서, 조선어 독본을 보내어 문맹퇴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은퇴한 후에도 자택에 점자 인쇄 시설을 갖추고 성경책과 다른 점자 도서를 출판하여 맹인들에게 대출했다.
우리 나라 맹교육에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남긴 박두성은 1963년 8월 25일 76 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 노산 이은상은 그를 가리켜 맹인의 세종대왕이라고 칭송했다( 이상 임안수, 199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