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2-12-26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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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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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점복업
조선 시대에는 숭유배불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도교 포함)를 배척하였기 때문에 맹승들은 천인의 신분으로 전락되었고, 고려 때의 10학이 6학으로 축소됨에 따라 풍수음양학이 관학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태종 6년(1406)에는 6학을 다시 10학으로 확대하면서 음양풍수학이 다시 포함되었다.
세종 20년(1438)에는 음양풍수학을 천문학, 풍수학, 음양학으로 분화시켰고(세종실록 권 38, 세종 20년 10월 계묘조), 세조 12년(1466)에는 풍수학은 지리학으로, 음양학은 명과학(命課學)으로 개칭되었다(세조실록, 권 38, 세조 12년 정월 무오조). 이 명과학은 맹인들만이 할 수 있는 학문인 동시에 직업이었다.
세종 27년(1445)에는 젊고 영리한 맹인 10명을 선발하고 훈도 4~5명을 두어 3일에 한 번씩 서운관(書雲觀: 후에 관상감이라 함)에 모여 그 업을 익히게 하였다(세종실록 권 107, 세종 27년 3월 무오조). 이로써 맹인들에게 점복 교육이 시작되었고, 이 제도는 국말까지 계속되었다.
맹인들은 과거에 응시하여 벼슬을 했는데 일월식술자(日月蝕術者) 한 명, 명과맹인(命課盲人) 두 명이 관상감에서 근무하였다.
조선 시대 유명한 맹승으로 유담(柳湛: 호조전서: 정 3품)과 지화(池和: 중훈검교첨지내시부사: 종 3품)가 벼슬을 받았고(세종실록 권 75, 세종 18년 10월 정묘조), 민간인 맹인 점복자로는 홍계관(洪繼官), 유은태, 구진주 등이 있었는데 특히 홍계관의 이름이 온 나라에 알려져 그의 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그가 사는 마을을 ‘홍계관 리’라고 하였다(민족문화추진회편,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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