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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8-13 09:40
맹인에 대한 명칭고(임안수)
 글쓴이 : 조홍중
조회 : 12,227   추천 : 753  
맹인에 대한 명칭고(임안수)

  소경(少卿)이란 고려 때 태상시(太常寺:고려 때 제사(祭祀)와 증시(贈諡)를 맡아보던 관청으로, 원래 목종 때 태상(太常)이라는 명칭으로 설치한 것을 문종 때 태상부(太常府)라 하였다가 1298년(충렬왕 24)에 원(元)의 요구에 의하여 봉상시(奉常寺)로 개칭하였다. 1308년(충렬왕 34)에는 전의시(典儀寺)로, 1356년(공민왕 5)에 태상시(太常寺)로, 1362년(공민왕 11) 전의시로 복구, 1369년(공민왕 18)에 다시 태상시로, 1372년(공민왕 21)에 전의시로 다시 개칭하였다. ; 李弘稙編,1982.국史大辭典, 韓國出版社. p.1331. )나 봉상시(奉常寺), 태복시(太僕寺:) 고려와 이조 때의 궁중의 승여(乘輿), 마필(馬匹), 목장(牧場) 등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1308년(충렬왕 34)에 사복시(司僕寺)로 고쳤다. 1356년(공민왕 5)에 태복시로 복구, 1362년에 다시 사복시로 개칭, 1369년에 태복시로 환원하였다가 1372년 사복시로 고쳤다 ; 상게서, p.649. ) 등의 관서의 두 번째 가는 종 4 품의 벼슬 이름인 소경이 그 어원이다(전게서, p.53. ).

  명통시(明通寺)란 고려 때부터 장님들을 한데 모아 독경(讀經), 축수(祝壽), 점복(占卜)을 가르치고, 점복 등 유사시 국가적 행사에 동원하기도 했으며, 임금이 능(陵)을 참배하는 행사 때 열을 지어 배웅시키는 일을 맡게 하는 관서를 말한다)의 소경이 장님의 보통명사로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봉사(奉事)는 조선왕조 때 군기시(軍器寺), 내의원(內醫院) 관서인 종 8품의 벼슬로 이 역시 명통시의 장님에게 준 벼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벼슬이 있기에 장님 하는 높인 말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이 한국인의 장애인 호칭 속에 나타난 장애인관은 차별적이고, 멸시적이지만 시각 장애인에 대한 장님만은 예외였다.
       
  관현맹인(官鉉盲人)이란 궁중의 내연서 관현합주나 가무반주를 하던 맹인 음악인을 가르킨다. 내연에는 남자 악공을 쓸 수 없고 창기들이 관현합주를 하기 힘들므로 궁중 행사를 위해서 두었다. 세종 때는 18명이었고, 그 후는 4~5명까지 두는 등 그 수는 다양했다. 이들은 장악원으로부터 1년에 4차례 이조에 추천서를 올려 사령서를 받아 임용되었다. 세종 이후 계속되던 관현맹인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15년간 정지되었다가 효종 2년에 부활되어 이조 말까지 계속되었다. 경국대전에는 관현맹인은 재직기간 400일이면 품계를 높이되 천인이면 종 6품에 그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들이 사용한 악기는 거문고, 당비파, 북, 장고, 해금, 대평소 한쌍의 피리 등이 있다.
         
  소경(少卿)이란 고려 때 태상시(太尙寺), 전중성(殿中省), 위위시(衛尉寺), 대복시(大僕寺) 등에 두었던 종4품 벼슬이다(이희승, 1986 ).  여말에는 맹인들이 국가로부터 검교직(검교직)을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강 안전 시위호군으로 종4품 '소경'에 해당하고, 태종 13년에 맹인 지화가 한성소윤이란 검교직을 받았는데, 이 소윤 역시 종4품 '소경'에 해당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많은 맹인들이 소경 벼슬을 받았으므로 주위 사람들이 이들에게 '소경님' 하고 불렀으므로, 다른 사람들도 맹인을 소경님하고 부르다가 맹인의 호칭으로 전칭되었을 것이다. 또한 대한 맹인 역리학회 지중현씨는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맹인과 여러 대신들이 앉아 있는 곳에서 왕이 '경'은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른 신하들은 전하의 눈길이 어느 신하에게 향하고 있는가를 알고 '예, 전하'하고 대답하는데 맹인은 그것을 몰라 당황하므로 왕이 맹인에게는 '소경'(小卿)하고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맹인들이 벼슬을 함으로써 소경 벼슬을 하게 되었고, 이에서 맹인의 호칭으로 유래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방에 따라 방언으로 '세겡이, 쇠게이, 쇠경, 쇠공, 쇠굉'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최학근, 1978).
         
  봉사란 우리 나라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맹인을 '봉사'라고 하고, 경기도, 황해도, 평남에서는 맹인을 '참봉'이라고도 한다. 봉사나 참봉의 명칭은 모두 조선시대 종8품과 종9품의 관직명이다. '봉사'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관상감의 음양과에 속하여 음양, 길흉, 점복의 명과학을 담당하는 맹인으로, 중인의 자손 중에서 초시에 4명, 복시에 2명을 취재(取才)하는데, 1등 합격자는 종8품 봉사, 2등 합격자는 정9품 부봉사, 훈도, 3등 합격자는 종9품 참봉 벼슬을 주었다. 이러한 맹인들을 '봉사님'이라고 부르던 것이 맹인의 일반적 명칭으로 변화된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맹인들이 점복업을 할 경우 천인의 신분을 갖게 되었다. 비록 음양학 또는 명과학이 관학이기는 하였으나 잡학이었기 때문에 양반들이 받는 벼슬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잡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별도의 벼슬을 주었는데 그 중 종5품 관직명이 봉사교위였다(임안수, 1986). 그러나 조선 중기 이 후에는 양반가의 맹인들이 점복업에 진출하면서 양반과 천인 출신의 맹인이 구별되어 벼슬을 받았다. 봉사가 맹인의 일반적 호칭이 된 이후 효녀 심청과 심 봉사의 이야기를 통하여 봉사란 명칭을 널리 보급했고, 그로 인하여 봉사란 명칭이 저속한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다(임안수, 1997). 그 외에도 외관상 눈이 멀쩡하면서도 보지 못하는 봉사를 당달봉사(청맹과니와 같음), 여자 봉사를 암봉사라고 한다(손진태 , 1978).
         
  판수(判數)란 맹인 점복자를 일컫는 말로 이에 대하여는 여러 학자들의 주장이 서로 다르다. 우리 나라에서 점을 치는 무(巫)를 무당, 박수, 판수, 일관, 지관으로 분류하고, 이 중에서 무당과 박수는 샤만(Shaman)과 직결되지만, 판수와 일관, 지관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이다. Hulbert(1903)는 "판수를 판단하다의 '판(判)'과 운수의 '수(數)'가 합성된 것으로, 점복자(fortuneteller)와 유사한 말이다". 이에 대하여 秋葉降(1950)은 판수란 후세에 합리적인 한자화에 지나지 않으며, 본래 박수의 와전이라고 주장하였다. 판수라는 조선어는 우랄알타이 민족들이 남무(男巫)의 호칭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여진어의 bahsi, 만주어의 faksi, Goldi어의 Paksi, Orochen어의 paktjine, Tungus어의 baksi, 몽고어의 baksi 혹은 bolsi 그리고 Turkic어의 baksi 등과 같은 계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박수와 판수는 그 형태나 기능이 분명히 구별되고 있다. 즉 판수는 점복, 독경하는 맹인을 가르키는데 반하여, 박수는 강신새신 (降神賽神)하는 남무(男巫)를 가르키고 있다. 그러나 충청도 지역에서는 독경자 까지도 박수라 부르며, 특히 충청북도 음성 지방에서는 맹인이 아닌 독경자를 '박수'라 하고, 맹인인 독경자를 '반수'라 하여 구별하고 있다(김영진, 1983, 재인용).

  장님은 맹인의 명칭으로, 이능화는 今娥時俗盲之詞 曰判數 亦曰杖林 蓋意味基杖行而賣卜者也(조선도교사 , 제22장, 맹인매복업)라 하여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점친다는 뜻의 장님이라고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맹인들은 맹청을 설립하고 단체 활동을 했다. 이 맹청에서 맹인들 사이에 여러 가지 명칭이 사용되었다. 그 중형으로 보기에는 연령이 높고, 아저씨로 보기에는 연령이 낮은 손위 맹인을 '긴 장(長)'에 높임말인 '님' 을 써서 '장님'이라 불렀다 한다. 따라서 장님은 맹청 내에서 존칭으로 사용되었다(대한 맹인 역리 학회 안성균 이사와 면담). 그러나 놀림말, 저주하는 말 또는 무당의 장님 타령으로 인해 경멸하는 호칭으로 전칭되었다. 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또는 40~50년 전만해도 서울, 경기지방에서 맹인이 지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놀다가 모여들어 맹인을 보고 '장님, 장님' 하면서 놀렸으므로, 장님이란 명칭은 오랫동안 놀림말로 인식되었다. 장님과 관계된 부정적 영향을 주는 말로는 '장님 보면 재수없다'는 것이다. 이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에는 맹인들이 명과학(命課學)을 전담하면서 합법적으로 점복과 독경을 업으로 삼았다. 그러나 무당은 교육을 받지 않고 푸닥거리로 생업을 유지 해왔는데 치병과 지성을 드리는 것이 맹인 점복업자와 그 기능이 같아 항상 경쟁 관계에 있었다. 나라에서 무당들의 영업 행위를 억제했기 때문에 무당들은 성내에 살지 못하고 성밖에 나가 살았다. 무당들은 정월 초가 되면 서울 성내로 들어와 새해 신수를 보고, 고사를 지내도록 하기 위하여 아는 집을 찾아가는데, 그때 맹인이 그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맹인에게 경이 이미 넘어갔으므로 돈을 벌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장님 보면 재수없다'고 하며 땅에 사금팔 이로 금을 긋고 침을 탁 뱉곤 했다고 한다(대한 맹인 역리 학회 지중현씨와의 면담). '장님 보면 재수없다'는 말이 퍼져나가 사람들이 맹인을 보면 재수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아침에 장님을 보면 재수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임안수, 1997).
         
  '당주'는 나라의 기도를 맡아 보던 소경을 말한다(이희승, 1986). 당주는 맹인 의 벼슬 명칭으로 그에 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 남아 전한다. 한중록에는 맹인 복자 김명기 당주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김인걸, 1979), 대원군과 민비의 암투 사이에 희생된 맹인 이유인 당주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김영곤,1983).
         
  '시각장애인'이란 명칭은 1970년대 초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명칭이 일본에서는 '시각장해(視覺障害)'로 대만에서는 '시각장애(視覺障礙)'로 각각 사용되고 있다. 이 시각장애란 명칭은 한자권의 나라에서 사용되던 명칭이 아니라 영어의 'the visually  handicapped'를 번역한 것이다. 영어에서는 시각장애가 세 가지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즉 시각불능(visual disability), 시각손상(visual impairment), 시각장애(visual handicap)이다. 시각불능이란 볼 수 없다는 의미가 강조되고, 시각손상이란 눈이 해부학적으로 손상되었다는 점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시각장애는 시각적으로 애로를 느낀다는 점에 강조점을두고 있다. 묵자(墨字)를 읽을 수 없는 시각장애 학생이 묵자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묵자로 공부한다면 시각적 애로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점자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공부하는 시각장애 학생은 시각적 애로를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시각불능과 시각손상은 시각장애인에게 상존하는 문제이지만 시각적 애로는 조건에 따라서 어려움이 될 수 있고 어려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사회적인 장애라고 할 수 있다(AFB. 1997). 따라서 영어권의 나라에서는 'handicap'(애로)이란 용어 대신 'impairment'나 'disability'란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세 가지를 분류하지 않고 시각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시각장애인에는 저시력인(과거에는 약시자)과 맹인이 포함된다. 저시력이란 '영어의low  vision'을 말하고, 약시란 'partially sighted'를 말한다(임안수,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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