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대한 단상 1
조홍중(전남대 명예교수)
나는 섬을 좋아한다. 왜 내가 섬을 좋아하는지, 굳이 찾는다면 한승원(1939), 정현종(1939), 함민복(1962) 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섬/ 한승원 (1939) 바다에 떠 있는 섬만 섬이 아니고, 혼자 있는 것은 다 섬입니다.
섬/ 정현종 (1939)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 함민복 (1962) 물 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세 시인의 섬에 대한 시는 매우 간결하면서 짧지만, 섬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어, 나는 그들의 섬에 대한 시를 좋아한다. 간결하게 사물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시의 가장 강력한 힘인 것 같다.
짧은 시라는 측면에서 보면 내가 대학원 논문 지도하면서 장난삼아 지은 시가 있다. 김용택(1948)의 시, 문성민학생의 “뭘써요. 뭘쓰라고요”와 ‘존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1952)”를 설명하면서 독창성과 삼독을 설명하기 위해서 인용한 시였다.
/섬/조홍중 (1960) 점,
/섬/(1960) 점, 점,
/섬/조홍중(1960) 선,
나는 같은 맥락에서 다산 정약용(1762)이 7세에 지었다는 /산(1769)/에 대한 시를 좋아한다.
/산(山)/ ”소산폐대산(小山敝大山), 원근지부동(遠近地不同)“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 땅이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원근법(perspective)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시를 생각하면 월터 미쉘(W. Mischel)교수의 스탠포드 마시멜로 실험이 연상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눈앞의 작은 산이 멀리 있는 큰 산을 가리는 것은 마치 현재의 작은 욕망이 미래의 더 큰 욕망을 덮는다는 그래서 물리적 원근감이 시간의 원근감으로 치환되어서 일까? 눈을 감고 겹겹이 겹친 산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수채화처럼 원근에 따라 농도가 다른 모습이 떠오른다. 이를 칸트(Immanuel Kant)식으로 말하면 외부 대상인 산이 감각을 통해 머릿속 이미지인 표상을 거쳐, 개념이 현상에 적용되어 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언어의 옷을 입고 시로 태어난 것이다고 볼수 있다. 나태주(1945)의 말을 빌자면 “시란 그 소재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이다‘’라고 한 것처럼 ‘사실(fact)이 진실(truth)’ 이 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서사(narrative)가 필요한 것 같다.
/사실이 진실에게(신영복, 경남 밀양,1941-2016)/
섬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고, 산골사람에게 해는 산봉우리에서 떠서 산봉우리로 진다. 이것은 섬사람과 산골 사람이 서로를 설득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된다. 지구의 자전을 아는 사람은 이를 어리석다고 하지만 바다와 산에서 뜨지 않는 해는 없다. 있다면 그것은 머릿속일 뿐이다. 바다와 산이라는 현장은 존중되어야 한다. 현장에 튼튼히 발 딛고 있는 생각의 확실함이 곧 저마다의 진실이기 때문이다.